자식 때리기를 겁내지 말라
서로 사랑하고 있는 남녀가 그 애정을 철저하게 전달하는방법은 육체의 교섭 밖에는 없다. 한편 남녀 이상으로 짙은 관레에 있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있어서도 부모가 자식에 대한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육체의 전달 외
는 없다. 특히 부모는 아이들의 과실을 꾸짖음으로써 아이들이 성장하고,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여러가지 인간의 규범을 철저히 가르쳐 줄 의무가 있다.그러므로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으로서 벌칙을 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즘의 부모들은 무슨 바람인지는 모르나 아이들에게 벌칙을 가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전후(戰後)의 일본인은 미국인원숭이 흉내를 많이 냈지만 무엇보다 앞서 모방해야 할 아그들의 교육방법만은 무슨 까닭인지 모방하지 않는 것 같다.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보우트장(場)의 주1 아들 형제와 우리 형제, 이렇게 넷이서 보우트로 강 상류고 있는 다리를 목표로 거슬러 올라간 일이 있었다.그 도중
썰물이 되어 강물이 줄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넷이서 보우를 질질 끌고 목적지까지 가서 사나이로서의 모험심을 크게- 족시키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미 날은 저물어 보우트장까
'자식 때리기를 겁내지 말라
지 되돌아왔을 때는 둥근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지금 시하면 집에서 대단히 걱정했을 것이 이해가 가나 어린 디으르는 왜 그렇게 큰 소동이 일어났는지 어이없기만 하였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우리를 몹시 꾸짖고는 이 모험의 동자인 나의 책임을 묻고 뺨을 때렸다. 나는 본의 아닌 범받았지만, 그러나 동시에 큰 손바닥이 내 뺨에서 작렬헛 때의 그 두려움 속에서 아버지의 애정을 느낀 것이 지금도억에 남아 있다.
아이들은 어리면 어릴수록 때려야 한다. 때림으로써 ·는 비로서 부모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솔직하게, 아무 꾸이 자식에게 전달할 수가 있다. 그 의사의 전달이 바로 애정이다.
기의 개인적인 문제를 남 앞에 내놓는 것을 상대방에 대한
우리네 부모가 장소를 가려서 아이들을 꾸짖는 것은, 아마
꾸짖는 데 장소를 가리지 말라
우리네 부모들은 자식의 과실을 발견하고서도 꾸짖는 데지 장소를 가린다. 구미(歐美)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과실발견한 순간, 그것이 대통령의 연회석 상이라 해도 자식들구짖으며,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자식을 꾸짖는 부모를 보말리지 않는다.의 과실의 책임은 그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부모책임이다.그리고 그 자식을 꾸짖음으로써 부모는 자기의아이들의 과실을 아이들에게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이들을 꾸짖음으로써 자신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아이들은 잊어버리기를 잘한다.그가 저지른 과실을 당그 자리에서 꾸짖지 않으면 아이들은 나중에 가서는 꾸짖도 그때는 이미 과실의 원인조차도 잊어버리고 있다.그리고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교활다.만일 부모가 장소를 가려서 아이들을 꾸짖기를 주저한면 아이들은 다음 기회에는 부모의 안색을 살피며 꾸짖지할 강소를 골라가며 천연스럽게 나쁜 짓을 감히 저지르게다.
실례로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란 부자(父子)라는 보편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부모가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흉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
요즈음 우리네 부모들은 아이들의 교육, 버릇 가르치기에대해서는 대만할 대로 태만하다. 웬만한 일은 선생에게 맡겨버리는 나쁜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버릇 가르치기나 교육은 차라리 가정의 책임이 앞선다. 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으므로 부모가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그 장소에 따라 아이들을 꾸짖지 않는다면 버릇 가르치기란 절망적인 일이 되고 만다.
내가 국민학교 때 박람회 구경을 간 일이 있었다. 큰 수조속에 예쁘장한 모형배를 띄워놓은 전시장에 이르자 배가 하도잘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본 나는 무심코 손에 들고 있던 작은깃대로 배를 밀어 보았다. 그때 옆에 같이 있던 아버지께서그 깃대를 떨어뜨릴 정도로 내 손을 힘껏 때리며 꾸짖으셨다.
아버지의 심한 호통과 위세에 주위 사람들은 잠깐 조용해졌다. 그 꾸지람은 내가 받은 것이지만 동시에 주위에 있는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 대한 질책 (責)이기도 했었던 것을나는 어린 마음에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사실 어른들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그 배를 움직이고 싶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여하간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의 버릇없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을 베푸는 것 같다. 우리는 차라리 버스나 공공강소에서 떠들고 잘못하는 아이를 보고 똘똘한 아이라고 만족하고 치다보고 있는 부모보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거리낌없이 질책하는 부모에게 더 호의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남의 자식도 잘못하면 꾸짖어라
자기 자식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남의 자식이라도 그의부모가 그 장소에 없거나, 또는 부모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그 부모가 자식의 잘못을 꾸짖지 않았을 때는 그 아이를 따끔하게 꾸짖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꾸중을 들음으로써 세상이 넓은것을 알고 세상이 엄격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가 옛날 고향에서 차를 몰고 있었을 때, 별안간 자전거를 타고 골목에서 노우 브레이크로 튀어나온 아이를 하마터면 칠 뻔하였다. 그 아이는 정신없이 달려 나오다가 급브레이크로 정거하는 자동차를 보고 자기의 과실을 깨닫고 놀라 달아났다.
나는 그때 곧 그 아이를 쫓아가서 차에서 내려 꾸짖자 아이가 시치미를 뚝 떼고 도망치려고 했으므로 목덜미를 잡고따귀를 몇 대 때려 주었다.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였으므로 그 아이에게 너 혼자를 위한 도로가 아니라는 것을큰 소리로 타일렀다. 마침 그때 생선가게에서 찬거리를 사고있던 그의 어머니가 놀라 뛰어왔으므로 나는 초면이었지만모자(母子)를 나란히 세워 놓고 야단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