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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냉정하게 승부는 차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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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포츠에서는 아이들과 철저하게 승부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장기에서는 아이들 연합군에게 자주 패한다.

그런 승부에서는 나도 떼를 쓰고 물러라, 못한다로 아이들과 말다툼을 한다.아이들과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나를 이기려고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여 싸우다가 마침내 이기면 환성을 터뜨린다.그 환성 속에서 나는 아이들이 장차 힘을 합해 어떤 일을 완성하고 올릴 함성을 들으려고 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부모의 자만심이고 아이들에 대한 감상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98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지 말라

아이들이 바라는 대로 빛이고 먹여주다 보면 과도한 영양그들의 몸에 공급하는 결과가 된다.

과도한 영양은 과도하게 살을 찌게 한다.까닭없이 큰 육체- 육체로서 연약한 육체일 뿐이다.

우리 집에서도 가만히 보면 미식을 하고 과식하는 아들은 극집은 크지만 건강이 나빠지는 수가 많다.그에 비해서 과식하지 않고 조식()에 만족하는 아이는 말랐지만 강인다.내가 어렸을 때는 먹는 것은 적었지만 요즈음 아이들에 비서 병이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사람의 건강을 유지해 주는 것은 결국 영양물이 아니다.옛날 명승(名僧)들도 기껏기름 튀김이나 먹었을 뿐 조식으로 장수를 했다.요리집 주그이 으래 사느냐 하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그렇고 일생을 반드시 조식으로만 일관할 필요도 없다.다만에 사회성이 없는 어렸을 때에 맛있는 것만 먹이고 과잉! 영양을 섭취하게 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장래를 해치는 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하지만 음식을 주는 법도 남자와 여자에 따라서 달라져야다고 본다.고이스미(小泉) 씨의 따님이 앞에 말한 회상기

에도 보면 「아버지는 여자아이는 어느 집으로 시집을 갈지 모르니 어려서 될수록 잘 먹이면 고약한 시어머니가 안 되며 어떠한 역경에 처해도 사치란 그저 그런 것이라는 정도로 생가하여 가난 속에서도 참아 나가게 된다.그러나 사내아이는 스스로 자기의 인생을 타개해 나갈 수 있으므로 젊어서는 검/ 한 생활을 보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우리 여자형제한테는 여러 곳에서 좋은 식사를 시켜 주셨다.고 술회하고 있다.그러나 아들 신끼찌 (信吉)씨는 따님들처럼 식사의 우대를 받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이것은 하나의 뒤어난 견식 이기는 하나 오늘날 같은 가정생활에서는 사내 아이와 여자아이를 구별할 수도 없을 것이다.그러나 아이들을 위해서는 미식보다는 조식이 그들을 위하는 것이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예로도 밝혀지고 있다.어려서의 미식은 결국 어른이 되었을 때에 조식에 대한 저 하력까지도 잃게 된다.

나의 소년 시절이었던 종건 후 물자가 없었던 때는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하여 마당에 조그마한 채소밭을 만들었다.그때 처음 열린 토마토를 먼 발치로 바라보며 꾹 참고서 익는 것을 기다렸다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동생과 나눠 먹었을 때 흥분을 곁들인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나의 일생을 통하여 잊을 수 없는 미식의 인상이 그 토마토이다.

그러한 일종의 극한적인 상황에서의 미식을 맛본 인간은 조식에 대해서도 쉽게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형제의 싸움은 말리지 말라

제 싸움은 시끄럽고 귀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모들은들이 싸우면 바로 부모의 권위를 휘둘러서 이것을 말린그러나 부모는 그 싸움이 일어나기 까지 가까이에서 사진행을 눈여겨 본 것도 아니다.리 집에서도 흔히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애들 어머할머니가 꾸짖고 말린다.나는 잡지를 읽거나 텔레비젼며 싸움을 보는둥 마는둥 그저 바라보고 있다.형이 동상당히 세게 때려 울리는 싸움도 사실은 그것은 그것이없는 행위만이 아니다.형으로서 그대로 참을 수 없는상대가 어리다는 것을 유세로 부리는 횡포가 있는 경우.기들에게는 어른이 참견할 수 없는 아이 들만의 도리가

말없는 약속이 있는 것으로 그것을 한편이 깨뜨림으로어나는 싸움에는 어른이 개입할 일이 못 된다.록 어린 놈이 억울하게 큰 놈에게 맞아 우는 경우라도은 잠자코 있는 편이 좋다.절대적 공평이라고 하는 것느 사람들에게나 있을 턱이 없고, 하물며 나이 차가 있제 간에는 있을 리가 없다.이가 아래인 아이는 억울한 일을 당함으로써 인간사회의

부조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그것이 부조리를 지나쳐서 잔인하게 될 때에는 비로소 부모로서 나무래 주는 것이 좋다.

나는 동생과 두 형제 뿐이었지만 하찮은 일로 수없이 싸움을 하였다.덩치가 큰 놈들이 집안에서 싸움을 하면 과장해서 말하지 않더라도 집이 무너질 지경이었다.한 번은 아무래도 말릴 수 없는 싸움을 보신 어머니는 비장해 두었던 단도를 우리 앞에 내던지며 「이걸로 마음대로 해 봐라! 하고 소리를 치셨다.맞붙어 노려보던 두 사람 앞에 떨어진 칼집에서 빠지려는 단도를 보고, 별 수 없이 두 사람도 흥이 깨져 파랗게 질린 낯으로 주먹을 거둔 추억이 있다.

보통 세상의 부모들은 싸움이 일어난 경위를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말릴 때의 구실로 나이가 위이니까」라든가 나이가 아래니까 하는 안일한 이유를 내세우지만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그보다 더 불합리한 일이 없다.싸움을 하는 한 비록 아무리 나이의 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형제는 형제의 입장을 떠나서 일 대 일의 인격으로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형제란 싸우면 싸울수록 정이 깊어지는 것으로, 이것이 형제 사이의 좋은 점이다.다른 사람이라면 평생 낯짝도 보기싫게 되는 것인데, 태풍 지나간 조용함은 아니지만 싸움이 지나면 서로 계면쩍어서 묘한 일로 화해가 되고, 전과 같은 사이로 되돌아 간다.

그것은 부모가 개입할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의 문제인 것이며, 부모가 쓸데없이 말렸기 때문에 오히려 형제간의 그러한 미묘한 사이가 망쳐지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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