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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와도 비를 피하지 않게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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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한 지 10년이나 15년 후에 만나보니 거의 별 흥미를 느끼| 못할 인물이 되어 있었다.나 자신은 좋고 싫음을 대단히 가리는 인간으로서, 좌우간의 인생항로에서 흥미를 느끼게 하는, 어딘가 마음이 통하는 점이 없는 인간은 친구로 치지도 않는다.그 속물적 모교| 졸업생 중에서 내가 사귈 수 있는 인간은 거의 건부가 재

중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인간들 뿐이고, 그러한 인나이 사회에 나가서는 학교의 우등생보다도 훨씬 먹대 있는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나 자신이 부모의 기대를 받고 국민학교에서 중학교에 걸서는 열심히 성적을 땄고 그 성적으로 동생과 비교가 되었.동생은 재주 있는 형」 신타로 ()와 비교가 되어뜻없는 열등감을 맛보았으리라고 생각되는데 나는 그러한 어버이의 자식에 대한 속굴걱 수재의 기대가 전적으로 잘못된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우수한 성격으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그러한 수재 가모이는 속물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입학시험 성적에 따라 담임 선생이 일방적으로 다른 학생을 반장, 부반장으로 지명했을 때의 굴욕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나보다도 오히려 아버지가 더 쇼크를 받았다.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오히려 내가 반장으로 뽑히지 못한 변명을 나에게 들려주었다.나는 그때 아버지나 선생들이 학교 성적으로 저울질 하는수재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통감했다.

하물며 그 보잘 것 없는 속물 수재의 척도 (尺度)를 자기의아들인 형제간에 적용한다는 것은 부모로서는 한심스러운 볼상식한 일이 아닐 수 없다.선생이 편파적인 시험으로 결정한 성적으로 어떻게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부모가 아이들을저울질할 수 있단 말인가?

형제 중 누가 우수하냐 하는 것은 부모가 죽은 후에 아이들이 사회적인 일을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그러나적어도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부모는 이 아이는 이런 점에서 우수하고 이런 점에서 열등하다고 하는 것을 다각적으로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그리고 그 인식 위에서만 부모의 자식에 대한 배려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어떠한 일이 있어도

학교 성적 같은 것으로 형제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비가 내려도 마중나가지 말라

부모는 자식이 생명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짐승으로 돌아가더라도 부모의 본능대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어떤 경우에는 다음을 억제하고서라도 아이들에게 가혹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요즘의 부모는 자식에 대해 과잉 보호를 하고 있는 실정인데 그것은 하나도 아이들을 위한 일이 못 된다.예컨대, 우리네 부모는 아이가 넘어지면 얼론 뛰어가 일으켜 준다.크게 다치기라도 했다면 또 몰라도 스쳐서 약간 피부가 벗겨진 정도라면 오히려 저 혼자 일어나는 것을 가만히 보아야 한다.비가 오면 마중을 가는 일도 역시 그렇다.부모도 볼 일이

는 것이고, 다소 비를 맞을 정도라면 우산을 옆구리에 끼그 마중을 갈 필요가 없다.넘어지면 일으켜주고, 비가 오면 중나가는 어머니는 결국은 자식의 대학 입학시험에까지 따나가서 문 밖에서 안절부절 뭇하게 되고 그 아들이 학원소동라도 벌이면 캬라델을 사다 들이미는 어리석은 짓을 하게다.전국시대(戰國時代)의 무사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나

가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비가 내려도 마중 나가지 말라 흔히 아들 딸에게 아버지로서 너무 가혹한 이별의 기고 떠났다고 한다.그것은 결국 아이들이 하나의로서, 하나의 여자로서 아버지에 대한 경의를 가지게

이 된다.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이 안쓰러워 어쩔줄을 모크모보다는 차라리 아이들을 뚝 떼어 놓고 바라보는 부이들의 처지에서 보면 결국 신뢰할 보람이 있는 것으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주기는 쉽다.비가 오면 - 받쳐주는 것도 쉽다.그러나 부모로서 그것을 국 참.게 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진실한 어머니로서의 책임된다.

전학했을 때 주위에 동화(同化)하도록 가르치지 말라

아이들에게는 뭐니뭐니해도 전학만큼 두려운 것이 없다.학은 아이들에게 미지의 공포, 불안 또는 의심을 갖게한다.아이들에게 있어서 전학은 어른이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보다 더 큰 변화이고 이질(異資) 세계로의 전입 (轉入)이다.그 세계에 안주(安住)하기 위하여 그 이질성에 아이들이 화(同化) 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지만, 그러나 동를 바라고 안주를 원한 나머지 그 전 세계에서 갖고 있던 성을 아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타협하고 겪는 것은 애처다.어리석은 부모는 아이들이 그들의 자존심이나 개성 때문에 위와 어울리지 못하여 고립하는 것을 우려하여 자식에게 기를 굽힐 것을 원하지만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Y장군은 한때 가마쿠라 (錄倉)에 이사한 일이 있는데 가마라의 사치스런 귀족 기질이 자기의 장남에게 물드는 것을 려워하여 곧 집을 팔아 토오코오로 이사해 버렸다고 한다것은 세번이나 이사한 맹자 어머니의 교육과도 같다고 말수 있으나, 그러나 세상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하여 그쉽게 이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부모는 아이들이 갑자기 달라진 환경 속에서 그 개성을 해

치지 아니 하고 상처를 입는 일이 없이 자연히 동화해 가도록조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또 어던 경우에는 아이들이 아이들 나름의 자존심에 의해서 지키고 있는 고립을 인정해 주고격려하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나 자신은 4학년 때까지 살던 흑카이도(北海道)에서 5학년때 가나카와현 (神奈川縣) 스시()의 국민학교로 전학했는데 내가 다소 사투리로 혹카이도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는얘기를 했다가 주위의 학생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갑자기 난폭해지면서 그 앞장을 섰던 애를 갈겨 주었는데, 그 서슬에 상대방은 나를 무서위하게 되었다.뒤에 들은 얘기인데 그 애가 제일 거칠고 질이 좋지 않은 개구장이였다고 한다.하옇든 내가 이제까지살던 제2의 고향의 명예를 걸고 광폭할 정도로 대항한 행동이 오히려 주위를 나에게 동화시켰다고도 할 수 있다.

전학은 부모가 생각하는 갑절의 갑절 이상으로 아이들에게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아이들은 부모가 간단히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그 변화에 순응하지 못한다.순응을 못하는 것에 아이들의 개성이나 어린이다운 점이 있는 것이다.부모는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어른들이 익숙한 사교성으로 해가는 새 환경에 대한 동화를 결코 무리하게 아이들에게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순응을 못하고 주위와의 간격을 고민할때 그 고민을 부모가 친구같이 이해성을 가지고 알아주지 않는다면 새로운 사회에서의 아이들의 가능성을 상하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관심을 보이는 것은 철저하게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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