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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름을 인정토록 교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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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들이 만일 남과 비교하여 자기의 서투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약점으로 생각하는 수가 있으면 부도는 그 약점을 격려해 주어야 한다.서투른 솜씨 그대로가 좋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부모도 함께 서투른 점을 극복(克服) 하도록 힘쓰며, 점차 나아져 가는 노력을 통해서 그 일을 끝내게 하는 이상의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재주가 있으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재주 있는 인간은 그 재주가 화근이 되어 결국 자신의 천성이 약간 낮다는 것을 큰 것으로 착각하고 인생을 그르치는 일을 가끔 볼 수 있다.둔재는 재주가 있는 사람보다는 확실히 못하다.그러나 부족한 것을 우위에 있다고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넘어서도록 노력하게 하고 조금씩 그 간격을 메꾸어 나가는 것으로 해서 아이들 마음속의 간격을

메꾸어 줄 수 있을뿐 아니라 훨씬 큰것을 쌓아 올리려고 하는 새로운 자신(自信)과 의욕을 갖게 해준다.

사실대로 말하면 인간이 손재주가 있고 없고는 숙명적인 천서이다.골프의 아베레이지 플레이만 보아도 아무리 노력해

자 재주 있는 플레이를 본질적으로는 따라 갈 수가 없다.그러나 그 서툴음을 일단 인생의 핸디캡이라고 생각하고, 재주문을 다르기 위해서 반복 연습하면 하옇든 한발짝 두발짝천천히 따라간다.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경쟁에서 둔재는 재주문을 훨씬 앞설 수가 있기도 한 것이다.

나는 어려서 몸이 약했지만 중학에 들어 가서는 아버지의필유로 축구를 시작했다.나는 그렇게 무재주는 아니었지만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소질을 요하는 축구같은 구기 (球技) 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우리 연습량의 3분의1만 연습하면서도 실전(實戰)에서 우리들을 능가하는 선수가 있게 마련이었다.

나는 축구를 시작하자 바로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절대로 축구를 그만 두지는 않았다.스포츠의 진미는 어디까지나 스포츠 자체에 있음과 동시에, 노력에도 따르지 못하는상대를 집요하게 앞지르고자 노력하는 그 자체에, 어떤 의미에서는 자학적(自唐的)인 재미가 있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결코 자학이 아니라 축구 이외의 분야에서 훨씬 상대보다굳센 자기를 길러주는 일인 것이다.

재주에서 따르지 못할 상대를 노력하면 반드시 따른다고 믿게 하는 검이 벌써 인생 전체에서 상대를 앞지를 스타트를 끊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가르쳐라

일본인은 꼭 한번 전쟁에 지고서는, 원자폭탄으로 폭격을 한 것이 아니라 당했는데도 히로시마에 「두번 다시 이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겠습니다」하는 어처구니없는 비석을 세웠다.그억 인구가 총참회를 하느니 어쩌니 하며 지금까지의 자기네 사고방식이나 감정은 모두 나빴다면서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국가방위에서 자녀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두 점령자에게 맡겨버렸다.

이제 와서는 또 편파적인 계급사관 (階級史觀)으로 교육 받은 대학생 자녀들의 몰골에 부모들은 눈살을 찌프리고 있다.그러나 사실은 요즈음 사회풍조의 책임은 이미 25년 전 전쟁에서 졌을 때 총참회네 뭐네 하며 무릎을 꿇었던 사람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전쟁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서의 진정한 가치나 의의라는 것은 10년이나 20년 혹은 반세기 나 1세기가 지났다고 해서 변할 이치가 없는 것이다.그런 진리를 오늘날이야말로 결실게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자면 전후에 악덕이라고까지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일종의 어리석음이라고 생각되기 쉬웠던 충()이라든가 효()를 놓고 한번 보자.인간에게 있어선 세월이 아무리 흐

를지라도 변할 리 없는 미덕이다.그런 진리는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면서 왜 그것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언젠가 어느 회합에서 재담가인 모씨가 이런 말을 했다.옛날에는 인간을 측정하는 데 가장 큰 척도 (尺度)가 효도라는 것이었다.그래서 재담(才談)이 서투른 제자라도 그를 무대에 세우고자 할때는 그의 재주를 추천할 수 없었기 때문에할 수 없이 그놈은 효자니까」라고 하는 것이었다.그러면그 한마디로 그 서투른 제자를 무대에 서게 할 수 있었다고한다.그것은 결코 효도에 대한 과장된 가치관이 아니라 오히려 어느 시대에나 자연적인 미덕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이야기다.그러한 가치가 어째서 현대에 들어와서는 일종의어리석음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물론 사회적인 통념은 시대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그러나 통념은변하더라도 사물의 진정한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구체적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

부모는 자식을 천박한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 그리고또 사회의 기구(機構)에 따라서 자기를 변질 하지 않는 강한인간으로 길러야 한다.그러기 위해 어릴때부터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보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 현대에 와서는 시대에뒤떨어기거나 혹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웃음을 사고 있지만과거에는 그것이 분명 미덕이었던 하나의 습관을 아이들 앞에서 떳떳이 보여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예컨대 축제일에 한식구가 모두 국기 계양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 되리라.식사 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습관도 좋다.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 않은 습관이라도 부모가 자기의 가치관으

로 감행해 보이는 용기가 오늘처럼 필요한 때는 없을 것이다.

60 전쟁은 나쁜 것이라고만 가르치지 말라 .

나는 전쟁을 꼭 죄악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전쟁을악시하고 평화를 미덕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은 전후에 급속만들어진 것이다.수십 년 전만 해도 독일의 역사학사 트이 휴케나, 칸트 같은 철학자는 민족 전쟁을 최고의 미덕라고 주장했다.그러한 철학이나 역사학이 아직도 인간의음속에 숭고한 재산으로 남아 있다.물론 지난날 누구 같이어놓고 전쟁을 찬미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우리가 평화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우선쟁에 비하여 보다 큰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그러나 어떤우에는 전쟁이 인간에게 더 이익을 가져다 주는 일도 있을있다.또 이익이 안되더라도 국가나 민족이라는 하나의격을 가진 공동체가 자기의 존엄성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생을 하는 수도 있다.예를 들면 소련의 부당한 침입에 대뇌 항가리는 자멸할 것을 알면서도 싸웠다.선재의 본질이 무엇이고 평화의 본질이 무엇인가도 아직르는 아이들에게 함부로 전쟁은 죄악이라고 가르치고 평화이 미덕이라고 강조하는데 대해서 나는 의문을 금할 수.를 들면 학생들의 학교 성적의 경쟁, 또는 체육에서의

경쟁도 작은 아이들로 볼 때 자기와 클라스메이트 사이의 하나의 전쟁이다.그러한 경쟁심이 있고, 적의 (敵意)를 느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물론 겉치장도 따르게 되지만 역시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자존심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아이들 나름의 노력을 하게 되고, 지혜에 있어서나 체력에 있어서나 향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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