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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 대신 스스로 일을 하게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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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중요한 일은 몇가지 있다.아이들이 아무리 방을 어지르더라도 모른 체 하다가 제 손으로 어디에 둔 장난감의 행방을 못 찾고 다시 가지고 놀려고 부모에게 묻거나 없어진 장난감을 부모 탓으로 돌리는 그 버릇만은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또 제 방은 아무리 어지러 놓더라도 그 습관을 남의 방에까지 끌어 들이는 것을 금하면 그것으로 족하다.제 방에서 끌어 낸 장난감으로 자기 방 이외의 영역을 어지르는 것을 금해야 한다.

정돈된 어른의 방과 어지러진 자기 방의 다른 점을 알게 되므로써 아이들은 자기의 한계를 알고 또 자기의 주체성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이 점만 지킨다면 제 방에 불을 지르지 않는 한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

효도할 시간이 있으면 자기 일을 하라고 가르쳐라

요즈음 묘한 풍조가 돌아 효도를 인간관계의 구폐(◈) 같것으로 생각하는 수가 있으나 이것은 참으로 우스운 이야

. 자식간의 관계는 시대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본질적로 변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부모는 어디까지나 보호자이

자식은 피보호자가 아닐 수 없다.보호자로서의 부모가 자기르기 위하여 진력한 봉사나 자기 희생에 자식들이 철들고 하나의 인간이 되었을 때에 자기를 이와 같은 모습이 세상에 내 보내 준 사람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는는 것은 인간 자연의 감정일 뿐이다.요즈음의 도덕관은 경솔하게도 피상적으로 흘러 사람들이도하는 일에 이상하게 쑥스러움을 느끼고 있다.그러나 효전적으로 부정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어머니 날니 아버지 날이니 하는 형식적인 행사를 생각해 내어 1년의 효도를 단 하루에 형식적으로 끝내 버리려는 경향까지있다.마치도 1년에 하루만 절에 가는 것으로 부처님에한 귀의(歸依)를 다하고자 하는 염치없는 행위처럼 아버지이니 어머니 날이니 하는 것은 가정에서의 아이들의 효도와동떨어진 것이다.그런 날을 하루쯤 제정해 봤자 불효자신이 초도의 필요를 새삼 깨달을 턱도 없다.

3자가 설교하는 효도는 차치하고라도 부모 자신이 자녀이게 대하여 바라는 효도란 부모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는 것을 그만 두고 부모의 기대보다 나은 인간으로 스그로 힘써서 성장하는 것이겠다.그렇다고 물론 매일매일의

정생활 속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하지만 형식이나 발라 맞추는 효도를 하며 그것으로자기의 임무를 다한 것처럼 착각하는 효도는 딱 잘라 거부해나려야 할 것이다.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식이 하나의 사람 노릇을 하기까지 양육해 온 노고는 농담거리가 아닌 이상,1년에 한번 어머니 날이나 아버지 날로서 보답될 정도가 아닌것이다.경우에 따라서는 부모의 노고를 너희들이 알 까닭이있느냐 하는 자세를 보여도 좋은 것이다.

그런 형식에 치우친 효도 따위를 자식이 하면 부모는 거절해 버려야 할 일이다.그런 시간이 있으면 제 일이나 하라고말해주는 것이 차라리 낫다.또 성장한 아들이라면 모르겠는대 국민학교에 들어갈까 말까해서 벌써 효자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런 아이는 앞길이 빤히 내다 보이는 것 같아 탐탁하지못하게 느껴진다.나는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귀찮음을 자꾸끼켜주는 것이 최대의 효도라고 생각한다.아무 말썽도 없는아이를 가졌다면 부모는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노릇이다.

형제 중에도 뒤이어 늘 걱정을 끼치는 말썽꾸러기가 차라리강한 개성을 지닌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효도란 누구나 어른이 되면 저절로 하고 싶은 덕()이다.그것을 어려서부터 기대하는 것은 도리어 아이의 특성을 망킬 염려가 있다.

아이들에게 개성적인 그림을 그리게하라.

으리 장남과 차남은 그림을 좋아한다.스스로 희망해서 화실에 다니고 있는데 어느날 아이들의 그림을 들여다보니, 그것이 통속적인 아카데미즘의 그림인 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그 선생님의 작품을 시험삼아 보았더니 더구나 졸렬한 그림이었으므로 화실다니기를 그만두게 하였다.대신 화구점에서 알게 된 모던 아아트의 조각가에게 아이들을 맡겼는데, 아카데믹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예술가의 아틀리에에 다니게 되자 아이들의 그림은 완전히 달라져 분방(奔放) 한 그림이 되었고 이제까지는 형이나 동생이나 꼭 같았던 그림에 분명한 개성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필경 그림에만 한할 뿐 아니라 어떠한 레슨을 받는 데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결코 어떠한 규범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사실 (寫實)이라든가 리얼리즘 위에 얹혀서 편안하게 앉아 있던 근대예술이 현대에 와서 무력해졌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창조력의 자극을 잃은 규범은 이미 인간의 규범일 수가 없다는 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소년시절에 전갈, 지네, 귀뚜라미 등 기분 나쁜 벌레를 정밀하게 사생하고, 이번에는 그 몸뚱이 의각 부분을 떼어 여러 가지 형태로 맞추어서 무서운 괴물을 그

아이들에게 개성적인 그림을 그리게 하라

려 어른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그것은 말하자면 일종의 몽타즈인 것으로 비록 그 기초가 된 것이 사실 (寫實)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몽타즈한 점에서 규범을 벗어난 아이의 창조력이 있다.

또 가정 같은 영화를 보아도 어른이 그 작품을 플로트대로보는 것과 달리 아이들은 도중에서 내용과 묘하게 동떨어져나가 가지고는 아이들 특유의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흔히유년기에는 선화(線畵)로 테두리한 것에 색칠을 하라고 하는시시한 킬하기 놀이를 시키는 부모가 있다.그것은 아이들의색감조차 기르지 못할 뿐더러 그들의 개성까지도 저해하는일밖에 되지 못한다.

서투른 손재주라도 격려해 주라

아이들이란 어른 이상으로 냉정하게 자기와 타인을 비교해는 법이다.특히 집단생활 속에서는 유치원이건 국민학교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타인과 자기의 비교를 아이들은 생정하고 공평하게 하고 있다.그 결과 아이들은 학업 성적의 차이 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 손재주가 있고 없음을 가장 민감하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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