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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연애상대를 미리 정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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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교제 상대를 선택해주지 말라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에게 어떤 상대가 교제 상대로 꼭 알맞는지를 어떻게 정해 줄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의 소년기를 살고 있는 것이고 결국어린이들의 인생은 부모의 의사에 관계없이 어린이 자신의것일 수밖에 없다.어린이는 어린이 나름의 자존심과 자부심(自負心)을 가지고 혹은 자기 취미를 가지고 친구나 장난감같은 것을 선택한다.놀이 친구로 삼기에 좋은 아이와 안좋은아이를 부모가 세속적인 도덕을 기준으로 하여 아이들에게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내가 소년시절을 혹카이도(北海道)에서 지냈을 때의 일이다.집 가까이에 마차꾼의 한 가족이 살았는데, 나보다 나이많은 두 형제가 참 친절했다.어머니는 우리 형제 그 집에 놀러 가는 것을 엄하게 금했다.이유는 시시한 귀족근성에서 신분이 다르다고 할까, 말하자면 그 집이 어딘지 모르게 불결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동생은 말리는 것을 듣지 않고 그집에 놀러 갔다가 이를 옮아 가지고 왔다.그리고 당시 토오코오로 출강나갔다가 돌아오는 지점장이던 아버지를 마중하러 역에 나갔을 때 동생은 마중나온 아버지의 부하직원들 앞에서 아버지에게 안기면서 자랑스럽게 「나, 이가 생겼어 하

고 큰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포함한 주위 사람을 당한하게 만들었던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그때 동생은 철이 없어서 무심히 그런 소리를 했겠지만 나는 까닭없이 그 집에 놀러 가는 것을 금한 어머니에게 대하여통쾌한 보복감을 느꼈다.

우리들 형제는 그 마차꾼 형제한테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그 중의 어느 것은 부모들의 도덕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악덕(善德)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령 돈 대신 과자를 걸고 하던 도박, 냇물을 따라 남의 집정원에 숨어 들어가 그 정원에서 벌레나 가재를 잡아오는 일종의 모험적인 절도, 혹은 어머니가 굳이 갖지 못하게 하던 칼을 사용하는 여러 가지 놀이.이러한 것들은 어린이는 언젠가는기필코 체험하고 알게 되는 것으로서, 지금 그것을 아는 것이 아이들에게 이르냐 늦느냐 하는 것은 아무도 판단할 수없으며 그것을 알 시기를 놓침으로 해서 아이들은 하나의 인생의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의 정의감과 도덕심을 가지고 있으며그것은 부모의 것보다 순수하고 예민하다.교제의 상대가 자기보다 평범한지 비범한지는 당자인 아이들이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친구란 다름이아니라 개성적이고 비범하여 자기에게 맞는 무엇인가를, 또는 자신에게는 전혀 없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듯하는 것이리라.

오히려 부모는 현재 자기 아들이 어떤 상대와 교제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되는 것이다.

물건 부수는 것을 막지 말라

새로은 창조에는 반드시 분석이 앞선다.분석은 어떤 의미에서는 파괴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예컨대 새로운 지등차를 만들어 낼 때 자동차 회사는 경쟁 상대의 우수차를 사들여서 그것을 완전히 뜯어 재킨다.

아이들이 새 장난감을 부수는 것은 창조본능의 발로이기도 하다.물론 충동적인 파괴본능은 아이들의 특성의 한 가지 이기는 하다.그러한 그 파괴본능의 이면에는 물건속에 숨겨져 있는 것을 뜯어보고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창조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혹은 또 정돈된 깨끗한 정원을 어지럽히고 혹은 깨끗한 벽이나 미닫이를 찢고 흠을 내고 낙서 하는 것도 파괴본능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그늘에는 새로운 순수한 인간으로서 기성길서에 대한 반역이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의 문명과 역사가 항상 소생하고 진보해 나가는 것은 인간이 기성 질서에 대한 반역과 파괴본능을 바탕으로 하여 창조성을 가졌기 때문이다.부모는 결국 아이들 이건의 세대의 인간이고, 기성질서 속에서 안식을 느끼는 인종일 수밖에 없다.그리고 아이들은 그것을 부수고 부모를 능가함으로써 인간 전체를 진보 발전시켜 나간다.

아이들의 충동이나 본능을 억누르는 일은 결국 인간의 자연적인 발육 발전을 억제하는 일이 된다.아이들이 물건을 부수고 더럽히는 것을 막는 것은 인간의 순수한 원형(原型)인 아이들을 아이들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일이 된다.새로 사 준 장난감을 부수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깨끗이 보관해두는 아이는 이미 어린이라고 할 수 없다.그것은 단지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왜소 (倭小) 한 어른에 지나지 않는다.

옷을 더럽히고 찢어 가지고 오면 아이들을 호되게 꾸짖는 어머니를 가끔 본다.이러한 어머니에게 있어선 아이들에게 입혀준 의복은 자신의 허영과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아이들르서는 그렇게 입혀준 옷은 실로 귀찮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어려서 나보다 훨씬 활발했던 동생이 어느날 바지에 구멍을 내어 가지고 와서는 어머니가 꾸중을 하자 항의하여 하는 말이, 「그렇다면 아무리 더러워지고 찢어져도 좋은 바지를 달라고 한 것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생각난다.

한창 자랄 나이인 국민학교 6학년의 나의 장남도 저희 어머니나 식모가 이중삼중으로 두껍게 기워 놓은 바지를 반 나걸이 못가서 마술처럼 구멍을 뚫어 놓는다.나는 그 구멍이나 타진 것을 보면 아이들의 새싹이 싹을 트는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느껴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입히는 양복은 모양이나 질에 있어서 아이들의 자유분방한 기능을 조금이라도 억제하는 것이면 안된다.아이들은 친구들이 입는 옷은 아무리 이상하고 거치른 옷일지라도 신기하게는 여길지언정 어른이 가르쳐 주지만 않는다면 그것을 경멸하는 일은 절대로 없는 법이다.

놀이를 제공하지 말라

최근 아이들을 위한 가지각색의 장난감이 갖은 정교함을다 부려 만들어져 쏟아져 나오고 있다.부모는 반은 허영심으로 다투어서 그것을 사서 아이들에게 주고 있지만 장난감의 복잡한 기능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이들의 유희 본능에 맞지 않는 것이 많음에 놀라게 된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이내 그 놀이를 업신여기고 내동댕이쳐버린다.아무리 정교한 장난감, 예컨대 진짜같이 만든 인터폰이라든가, 트란시바아 같은 것보다는 차라리 쑥 빠진 막대기 한 개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유희의 창제력을 자극 하는지모른다.그들은 단순한 그 소재 (素材)를 가지고 정교하기 짝이 없는 복잡한 놀이를 생각해 낸다는 것을 부모는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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