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가까운 이야기로 우리 집에는 아들이 넷이 있는데아버지인 나를 포함해서 식사시간은 바야흐로 전쟁터라고나할까, 동물원의 급식시간 같다.형제끼리 뿐 아니라 아버지인나까지가 음식 때문에 투쟁을 할 지경이다.한심하다면 한심하지만 그 소란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 분명히 있다.
남자는 애 아버지가 된 순간 자기가 어제까지 하나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인간 존재의 사슬 (체인)에 부모와 자기,그리고 아들과 자기라는 형태로 연결되어 존재하고 있다는사실을 느끼는 법이다.그리고 동시에 인간의 존재의 계보는결크 하나의 고리가 하나에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깨닫게 된다.
즉 하나의 고리에서 복수의 고리 (사슬)가 나오고 다시복수의 하나하나의 고리에 복수의 고리가 이어져 간다고 하는 사실을, 수천 년 전에 석가는 그의 존재론의 앤솔로지라고나 할 법화경(法華經) 속에서 설법하고 있다.부모가 아이에게 형제를 주지 않는 것은 하나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과같은 정도의, 인간으로서의 태만과 의무 불이행이라고 말할수 있다.
하나의 고리에 하나의 고리로 밖에 연결될 수 없는 외아들은 인간의 자식으로서 결함이 있는 성장을 할 수밖에 없다.형제는 부모가 결코 줄 수 없는 것을 주고 받는다는 사실을부모는 알지 않으면 안된다.
불량성의 싹을 마구 꺾지 말라
아이들에게 불량성 (不良性)이 있다는 것과 아이들이 불량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그 진상을 알아내는 것이 부그의 의무이고 자녀들의 참다운 이해에 이어진다.아이들의 불량성 중에는 부모에게서 그 표본을 볼 수 있는속적인 도덕성과 통속성에 대한 반역이 섞여들어 있다.그고 더러는 부모에게서 볼 수 없는 강한 개성의 싹이 있는이다.불량성의 싹이 그대로 자라서 아이가 불량해지는 것도 곤란하다.그러나 불량성의 싹에는 사실은 아이들이 불량게 성장하는 것 말고 그가 큰 인물이 될 가능성이 숨겨져기도 하다.부모는 이 진리를 역사상의 많은 예에 비추어닫고, 아이들을 냉정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물론 부모가이해하고서 길러내는 불량성이란 진짜 불량성이라고 할 수없을지 모르지만.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소년 시절에 드물게 보는 개구장고 한다.그러나 노부나가가 장수(將師)로서 상대방의을 서늘케 한 대담한 전술은 아마 그 불량성의 자유분방함길러졌음은 틀림없다.그의 장인이 된 사이도오 (齊藤道三)는 노부나가를 한번 보자, 이미 자기가 고생하여 넓혀 놓영토가 가까운 장래에 그의 손에 들어갈 것을 예견하고
물량성의 싹을 마구 꺾지 말라 탄식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불량성은 단순히 그것이 반도덕이란 것으로 끝나는 수도 있으나, 그러나 동시에 도덕을 넘어서서 기성 질서,기성 가치에 대한 반역을 키우고그때까지의 문명 문화의 요소를 뒤엎고 바꿔놓을 큰 일을 장래에 수행할 바탕이 되기도한다.
인간의 문명은 어느 시대이고 이러한 강한 개성에 의하여소생되어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아이들의 불량성을길러줄 것까지는 없다.그러나 단순히 기성도덕에 얽매여 그것을 무서워 하고 싹을 자른다면 아이 자신뿐 아니라 사회의위대한 가능성을 어리석게도 말살해 버리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三木消)의 철학 수필집을 읽다가 그만 겉치장을 가장럭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을 알고 매우 안심한 일도
아이들의 허영심을 장려하라이들도 좀 철이 들면 남에게는 숨기지만 혼자서는 자기영을 허영이라고 인정하며, 겉치장을 하면서도 대단히하는 법이다.자신 어려서,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허영장이 인지도 모만, 대단한 멋장이여서 그 허영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말- 있는 노력을 자신에게 강요하여 생각지도 않은 성과를
일도 있다.영심으로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어려운 책을 읽기도 하교과과정에도 없는, 예를들면 제2 제3의 외국어를 배도 했다.예술적인 훈련을 쌓기에 골몰하기도 했다.그은 그 아이들의 실제의 인생 목적이 아니더라도 남이로 시켜서 하는 경우와는 달라, 아이들이 허영을 채우기서 노력하는 경우에는 훨씬 애를 덜 써도 아이들의 몸법이다.도 나 자신의 허영에 대해서 상당히 고민했다.아마 틀립중학 2학년 때였을 것이다.학교 도서관에서 미끼 기요시가 허영에 대해 말한 것 중에 인간의 겉치장이인간에게 엄청난 에네르기를 주는 보기를 들었다.「가령 모든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하자.그러면 나만은 죽어야 겠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나올 것은 틀림없다.인간의 허영심은이다지도 큰 것이다」라고 말했다.그리고 또 「인간이 허영적이라고 하는 사실은 인간의 보다 차원이 높은 성질을 보여주는 것이다.허영심이란 자기를 현재 이상의 것으로 보이려는인간적인 정열이다.그것은 가장(假裝)에 지나지 않으나 평생을 가장으로 일관한다면 그 사람의 본성(本性)과 가성 (假性)은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기 애들에게 이렇다할 특별한 재능의 싹은 볼 수 없으면서도 겉치장만이 강할 경우, 사실은 그것이 자기 애가 다른모든 영역에 대하여 겉치장이 없는 아이보다 강한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이것 역시 부모의 겉치장으로그리고 그것은 나 자신의 허영심을 채워주기도 한 것이지만,가까운 유치원의 독일인 선교사한테 영어를 배우러 다녔다.공부가 하나도 즐겁지는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배우지도못하는, 어쩐지 멋이 있는 외국어를 내가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 나의 허영심이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그 교회에 다니는 길에 유명한 개구장이 가 있었다.그래서 지나가는 아이들은 누구나 한번씩 시달림을 당했다.나도 겁을 먹었지만 약간 고급스런 외국어 습득이라는 목적 때문에 그곳을 지나다닌다는 허영심이 나를 좀 용감하게 만들어, 나이 많은 그 개구장이를 오히려 초연하게 오만한 태도로 무시하고 지나 다닐수 있었고 그 기백으로 상대를 꺾어 그 아이는 나를 괴롭히지 못했던 것을 기억 하고 있다.
아이들의 거짓말을 문책하지 말라
아이들의 거짓말을 모두 나쁘다고만 하는 것은 잘못이다.덮어놓고 그렇게 몰아낼 이유는 없다.
자기의 과오나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은 지적하고 나무래도 좋다.그렇다 해도 모든 거짓말에는 독창성이있는 법이다.거짓말이란 남보다 앞서 가서 독자적인 자아(自食)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라고 미시마 (島由紀夫)씨도 말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