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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희망이지만 부모의 맘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모 2021. 1. 2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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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모리 (河盛好蔣)씨의 말을 빌자면, 부모는 아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청춘과 미래의 희망에 부풀어 있는 자기 자신의모습을 다시 바라보려고 하지만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이 세상의 상례이다.

어느 심리학자는 일본과 서구의 부모 자식간의 관계를 비교하여 일본은 감점법 (減點法)이고, 서구는 가점법 (加點法)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일본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100퍼센트의 가능성을 믿고서 기대하다가 그 꿈이 하나하나 깨져나갈 때마다 부모 자식 관계가 100퍼센트에서 감점되어 간다. 는 뜻이다.

이에 반해서 서구에서는 서구의 근대주의가 이룩해 놓은좋은 의미에서의 에고이즘으로 우선 허식을 버린 일 대 일의

부모 자식 관계, 즉 0점에서 출발하여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에 플러스 해 간다.

그 결과 그것이 50점에도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만큼부모 자식 사이에 플러스가 있었다는 셈이 된다.

어찌됐든 서구이건 일본이 건, 어느 집 부모나 자식에게 기대를 건다. 그러나 아무리 총망받아도 아이들 역시 자기의부모의 피를 물려받은 인간인만큼 부모의 결점과 장점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운명은 결정되어 간다. 자식들의처지에서 본다면 그런 피를 자기에게 나누어 준 부모로부터가능성도 없는 가능성이 믿어지고 기대를 걸어오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일 게다.

아이들이 부모의 분신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동시에 독립한 한 개의 인격이라는 사실을 부모는 먼저 이해할 필요가있다. 요즈음 치맛바람의 교육 자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열중함으로써 자녀들이 자기가 나누어 준 피의 능력 수준 이상의 결과를 가져을 수 있다고 맹신하고 있을지도 모르나 그건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의 부모도 역시 나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속물적인 수재를 기대하셨다. 그 당시 무슨 이유에서였는지도 모르나 내가다니고 있던 역시 속물 수재를 길러 내는 것으로 유명한 중학교가 통지표를 만들지 않고 선생이 일일이 학생에게 구두로 성적을 전했다.그런데 나는 운동에 정신을 빼앗긴 탓으로 성적이 떨어져서 아무래도 부모의 마음에 흐뭇할 것 같지도 않기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 노트에 적어 넣은 성적을친 일이 있었다.참 뒷맛이 좋지 않은 일이었다.

어렸을 때 시체(屍體)를 보여줘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죽음에서 가장 거리가 먼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최후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인생, 그 자체에 대하여 확실한 인식을 가질 수가없다.그들은 인생의 진상(眞相)에 눈을 감은 인간인 것이다.

만일 부모가 자기 자식들을 인생에 대하여 굳세고 강인한자각을 지닌 인간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그리고 또 그 자각의에 아이들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인생을 확고한 걸음걸이로 걸어갈 것을 기대한다면 죽은 사람을, 즉 시체를 가능한 한 일찍 아이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어느 일요일 날 어버지를 따라 아버지가근무하는 회사의 배가 조난으로 좌초(坐礁) 한 현장을 보러간 일이 있었다. 그때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로프를 안고 물속에 몸을 던졌다가 결국은 익사한 2등 항해사의 시체를 아버지가 보여 주었다.아버지는 물 속에서 언 그 시체의 백납같은 얼굴의 아름다움과 그 사나이가 남아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감행한 행위의 무상성(無償性)에 대해 간단한및 마디를 들려 주셨다.

만년에 고혈압으로 고생하면서도 일에 목숨을 바쳐도 좋다고 말씀하시며, 회사의 난국을 대하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어렸을 때 시체를 보여줘라

스리없이 아버지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면서, 그때마다 아버지 얼굴에 어렸을 때 본 그 죽은 사나이의얼굴이 오버랩 되어옴을 느꼈다. 그것은 무섭다기보다 깨끗하고 맑은 느낌의 이미지였다.그리고 아버지가 회의 석상에서 졸도하신 채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검시(檢屍)를 기다리며 회의장에 누워 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차디찬 얼굴에서 어려서 본 그 그림자를 다시 보았다.

그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시체에 손을 대 보았고, 그 순간웬지 모르게 아버지와 나의 관계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 다른 형태로 앞으로도 줄곧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그 후로 줄곧 아버지의 그 모습은 나를 이끄는 큰 힘의 근원이 되었다.

신(神)에 대하여 얘기해 주라

큰아들이 모의고사를 처음 치르러 가는 날의 일이었다. 아내는 아들에게 「시험을 잘 치기 위해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신에게 기도를 드려라 하고 일렀다.그러자 장남은 「그런짓을 해서 무슨 소용예요.시간이 모자라니까 일초라도 아껴시험을 보는 것이 낫겠지요.평소의 실력이 그대로 나오는데기도해 봤자 별 수 없어요」하고 반박했다.아내는 대꾸할 말이 막혀 당황하고 있었다.

부모는 부모로서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해도 평소 아이들에게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해 두지 않으면 결국 이런 꼴이 되고 만다.

사람은 신앙을 갖는 것이 갖지 않는 것보다 그 삶에 있어서 훨씬 이득이다. 이것은 파스칼의 신앙에 대한 말이나 제임스 철학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자명 (自明)한 일로 나는 생각한다.오늘날의 사회에서 처럼 신앙을 비과학의 상징처럼간주하는 괴상한 과학신봉이 보편화되어 버린 세상에서는 부모도 여간 식견이 없어 가지고는 아이들에게 알기 쉽게 신이나 부처에 대하여 이야기 해 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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